언론 현실 얼마나 반영했을까, 기자 드라마 ‘조작’, ‘아르곤’

고희진 기자

피디, 앵커, 기자, 작가가 한데 모여 오늘 밤 뉴스를 논의하고 있다. 못 보던 기자의 얼굴이 하나 보인다. 담당 PD가 묻는다. “아,(연화씨는) 누구랑 동기지? 몇 기야?” 연화가 우물쭈물 대답한다. “전 특채입니다. 특채, 2년 전에 들어온 계약직이고요. 남은 6개월 아르곤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가 끝나자마자 누군가 화난 듯이 맞받아친다. “야, 네가 선배들 자리 파먹고 들어온 그 용병 쓰레기야?”

언뜻 최근 파업에 돌입한 어느 방송국에서 실제 있었던 일인가 싶지만, 이는 TV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가짜 뉴스가 넘쳐나는 시대, 언론은 어느새 검찰과 함께 국민들이 가장 청산하고 싶어 하는 대상으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미디어는 ‘기자’에 주목한다. 최근 기자를 소재로 한 월화 드라마 두 편이 방송 중이다. ‘기레기’라는 위악을 내세워 사회 부조리를 파헤치는 기자들의 모습을 그린 SBS <조작>과 팩트를 통해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탐사보도팀 기자들의 삶을 다룬 tvN <아르곤>이다.

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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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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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다큐? ‘기레기’로 전락한 기자의 현실

두 작품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사명감과 열정을 가진 기자들의 이야기지만, 드라마를 보다 보면 곳곳에서 한국 언론의 비루한 현실을 꼬집는듯한 부분이 눈에 띈다. 지난 7월 방송을 시작한 <조작>은 첫 회부터 최근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굵직한 사건들을 녹여냈다. 극 중 C&C 그룹 민영호 회장이 자신이 뇌물을 준 정재계 인사들의 로비 장부를 대한일보 스플래시 팀장 이석민에게 건네주는 부분은 2015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성완종 리스트’를 떠올리게 만든다. 더불어 부패한 검찰과 정부, 기업 관계자 또 이들과 결탁해 여론을 조작하는 언론 재벌의 모습은 최순실 게이트의 한 단면 같아 보인다.

<아르곤>은 첫 회를 ‘해명시 미드타운 쇼핑몰 붕괴 사건’으로 시작했다. 150명이 넘게 있던 현장에서 다수의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한 사고, 그러나 관계 부처의 대응은 미숙했고 관련자들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 일쑤다. 사고 수습 컨트롤타워와 결탁한 굴지의 방송사 간부는 정부로 쏟아지는 여론의 비난을 돌리기 위해 무고한 현장 소장에게 사고의 책임을 덮어 씌우려 한다. 어쩔 수 없이 ‘세월호’가 떠오른다. 세월호 참사 당시 일부 언론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무작정 보도해 혼란을 키운 바 있다.

개개인이 하나의 언론으로 기능해야 한다는 사명감은 사라지고 단순한 회사원이 되어 회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기자의 모습은 한국 사회의 모든 기자들을 대변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단순히 허구라고 단정 짓기 어려운 부분이다. 아르곤의 주인공 천우희가 ‘용병 기자’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최근 총파업에 들어간 MBC는 꽤 몇 년 전부터 일부 기존 기자들을 다른 직종으로 전보함과 동시에 ‘시용 기자’라 불리는 계약직 기자를 채용해 온 상태다.

문화는 현실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 같은 현 상황은 제작자들에게도 고민이었을 것이다. 이윤정 <아르곤> PD는 “저 역시 MBC에 몸담았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고민과 갈등이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이들은 용병 기자, 시용 기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언론사 지형도가 바뀌면서 MBC, YTN 등 다양한 곳에서 여러 일이 있었다”며 “다만, (드라마에서는) 한 방송사를 떠올리게 되면 좋지 않다고 생각해, 한 집단을 특정적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배려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기자’에게 거는 기대

“이석민은 기레기 인정 안 했고, 무시하는 기자였거든요. 그런데 현실을 접하면서 차라리 기레기처럼 하면 대한일보가 바뀌지 않을까, 적폐가 청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돼죠.” <조작>에서 대한일보 스플래시 팀장으로 참기자의 표본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이석민 역의 유준상은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극중 사회의 적폐가 되어가는 대한일보를 살리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는 이석민은 정공법이 아닌 ‘기레기’의 모습으로 사건을 풀어가는 한무영(남궁민)의 방식에 마음이 쏠리기도 했음을 고백한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이석민은 정공법을 택한다. 그는 ‘좋은 기사’로 승부를 본다. 권력과 주요 정보를 최전선에서 지켜보는 사람으로서 팩트에 기반을 두며, 사회적 강자가 아닌 약자의 시선에서 공감하는 뉴스를 만들어내는 기본에서 그는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의사, 검사, 요리사 등 다양한 전문직군을 소재로 삼는 드라마에서 현재 비난의 대상이기도 한 ‘기자’를 선택하는 이유는 바로 그들의 사회적 양심과 열정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이윤정 PD는 “<아르곤>을 만들기 위해 몇몇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정말 가슴이 뜨거웠던 때가 있었다”며 “정말 뜨겁게 사는 사람들 같았다”고 말했다.

■장르화되지 못한 ‘기자’드라마

다만, 지금까지 국내에서 방영된 기자 드라마 중에는 다른 전문직군을 다룬 드라마들처럼 크게 히트한 작품이 없다. 손예진, 지진희 등 걸출한 배우가 출연해 방송기자의 삶을 그린 <스포트라이트>, 이종석, 박신혜가 출연해 잘 알려지지 않은 수습기자들의 삶을 보여줘 흥미를 끌었던 <피노키오> 등이 있었지만 소위 대박이라 불릴 만한 작품은 없었다. 마무리를 향해 달리고 있는 <조작>은 10% 내외의 시청률을 유지 중이지만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진 못하고 있다. <아르곤>은 첫 회 2.5%(닐슨코리아 집계)의 시청률을 기록한 상태다.

최근 종영한 tvN <비밀의 숲>이 검찰과 경찰의 이야기를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만으로 접근하지 않고 치밀한 사건의 전개로 풀어낸 것과 달리, 지금까지의 국내 기자 대상 드라마는 직종의 특성을 살려 장르화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5년 개봉한 영화 <스포트라이트>가 미국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 탐사보도팀의 취재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린 것 처럼, 삶과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보편적 주제 대신 기자 드라마만의 특별한 이야기 구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전문직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일반인이 잘 접근하기 어려운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시청자에게 볼거리와 재미를 준다”며 “기자를 소재로한 국내 드라마는 이야기 구성이 지난해 탄핵 사건을 다룬 현실 언론의 흥미진진함에도 미치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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