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K팝 가고···돌고 돌아 다시 ‘듣기 편한 음악’의 시대가 왔다

김한솔 기자
(여자)아이들 ‘난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유튜브 갈무리

(여자)아이들 ‘난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유튜브 갈무리

“오늘도 아침엔 입에 빵을 물고 똑같이 하루를 시작하고…”

국내 각종 음원 차트에서 1위를 한 (여자)아이들의 ‘난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아딱질)는 지난 몇 년간 유행했던 K팝과 사뭇 느낌이 다르다. 이 노래는 지난 1월 발매된 (여자)아이들의 두 번째 정규앨범 <2>의 6번째 트랙에 수록된 곡이다.

그룹 (여자)아이들. 큐브 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룹 (여자)아이들. 큐브 엔터테인먼트 제공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가사다. 한글보다 영어 가사가 더 많은 요즘 K팝과 달리 가사 전체에 영어가 거의 없다. 곡의 내용도 지극히 일상적이다. 노래를 들으면 피곤한 얼굴로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던 중, 과거의 인연이었던 누군가를 우연히 목격하고 온종일 심란해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그려진다. 주인공은 “토할 것 같은” 기분으로 하루를 보낸 뒤 결국 “그냥 지나치는 게 나을 것 같아. 난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라고 자기감정을 정리한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겪을 법한 일을 담백한 가사와 펑크 기반의 밝은 밴드 사운드에 녹여낸 ‘아딱질’은 입소문을 타고 조용히 역주행했다. 그리고 1달 반 만에 유튜브, 멜론, 지니 등 음원 차트를 모두 석권했다.

앨범의 타이틀곡도 아닌 수록곡이 별다른 홍보 없이 입소문만으로 인기를 끈 것은 최근 K팝 청취자들의 ‘이지 리스닝(easy listening)’ 선호 경향 때문이다. 이지 리스닝은 ‘듣기 편하고 쉬운 멜로디를 가진 음악’을 말한다. ‘아딱질’은 전형적인 이지 리스닝 음악이다. (여자)아이들의 기존 히트곡 ‘퀸카(Queencard)’ ‘톰보이(Tomboy)’ ‘누드(Nxde)’ 등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신인 그룹 TWS.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제공

신인 그룹 TWS.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제공

‘아딱질’에 이어 음원 차트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신인 보이그룹 TWS의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역시 마찬가지다. 이 곡은 드럼과 신스 사운드가 경쾌하게 섞인 멜로디에 첫 만남의 설레는 감정을 귀여운 가사로 표현했다. ‘아딱질’과 비슷한 시기 발매돼 ‘청량한 이지 리스닝 댄스곡’ 이라는 입소문을 타고 조금씩 차트 상위권으로 진입했다.

이지 리스닝의 유행은 ‘듣는 음악’보다 ‘보는 음악’의 느낌이 강했던 최근의 K팝 스타일에 대한 대중의 피로감에서 비롯된 결과로 보인다. K팝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화려하고 멋진 퍼포먼스, 독특한 세계관, 뚜렷한 콘셉트 등 음악 외적인 것들이 음악 그 자체보다 더 주목을 받는 분위기에 대한 피로감이다. 대중문화 전반에서 나타나는 거대한 레트로 흐름과도 무관치 않다. (여자)아이들의 ‘아딱질’은 처음 나왔을 때부터 요즘 재유행하는 J팝과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상에서 얻는 소소한 깨달음을 얻고 작은 행복을 찾는 가사, 편안한 멜로디가 마치 일본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는 것이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사실 10~20년 전 K팝은 오히려 요즘 유행하는 이지 리스닝 음악과 비슷했다”며 “대규모 기획과 설정의 시대가 지나가고 편한 음악의 시대가 돌아온 것 같다”고 말했다.

SBS 인기가요에서 1위를 한 (여자)아이들의 ‘난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 경쟁곡인 비비의 ‘밤양갱’, TWS의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역시 모두 이지 리스닝 계열의 곡이다. 큐브 엔터테인먼트 제공

SBS 인기가요에서 1위를 한 (여자)아이들의 ‘난 아픈 건 딱 질색이니까’. 경쟁곡인 비비의 ‘밤양갱’, TWS의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역시 모두 이지 리스닝 계열의 곡이다. 큐브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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