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레스토랑 셰프가 더러운 샌드위치 가게로 온 이유···드라마 ‘더 베어’

오경민 기자
뉴욕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셰프로 일한 카르멘 베어(제러미 앨런 화이트)는 죽은 형의 레스토랑인 ‘더 비프(디 오리지널 비프)’를 운영하기 위해 시카고로 돌아온다. 마구잡이로 일해 온 직원들은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려는 그에게 적응하기를 거부한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뉴욕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셰프로 일한 카르멘 베어(제러미 앨런 화이트)는 죽은 형의 레스토랑인 ‘더 비프(디 오리지널 비프)’를 운영하기 위해 시카고로 돌아온다. 마구잡이로 일해 온 직원들은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려는 그에게 적응하기를 거부한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오마주] 세계 최고 레스토랑 셰프가 더러운 샌드위치 가게로 온 이유···드라마 ‘더 베어’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카르멘(제러미 앨런 화이트)은 세계 최고라 평가받는 레스토랑의 셰프입니다. 유명 미식잡지 <푸드 앤 와인>의 ‘올해의 신예 셰프’로 뽑혔을 때, 그는 고작 21살이었습니다. 모두가 주목하는 천재 요리사가 주인공이지만, 드라마의 배경은 정갈한 플레이팅과 화려한 맛을 자랑하는 고급 프렌치 다이닝이 아닙니다. 카르멘이 고향 시카고의 작고 지저분한 샌드위치 가게로 오면서 드라마 <더 베어>가 시작됩니다.

카르멘은 형 마이클이 운영하던 샌드위치 가게 ‘디 오리지널 비프(The Original Beef·더 비프)’를 물려받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형은 4개월 전 자살했습니다. 식당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입니다. 직원들은 비협조적이고, 부엌은 더럽습니다. 일매출도 못 채울 상황인 데다 거래처도 다 끊겨가죠. 빚은 어마어마합니다. 세금은 5년째 하나도 안 냈고요. 메뉴도 요리라고 부르기 어렵습니다. 더 비프에서 제일 잘 팔리는 음식은 질척이고 물컹거리는 토마토 스파게티입니다. 형과 함께 가게를 운영해온 리치(에번 모스배크랙)는 ‘굴러온 돌’ 카르멘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겁니다.

이대로도 시원찮은 주방에 새로운 문제가 연거푸 터집니다. 갑자기 들이닥친 시카고 보건국 직원은 레스토랑의 위생 상태가 좋지 않다며 ‘C등급’을 주고 떠납니다. 출장 요리를 나갔던 리치는 대형 사고를 치고, 마약 거래상들이 가게 앞에서 소란을 피웁니다. 장사 직전에 갑자기 정전이 돼 냉장고가 멈춰버리기도 합니다. 마이클과 카르멘의 삼촌 시세로는 “이 식당은 저주받은 것 같다”며 “5분만 여기 있어도 미쳐버릴 것 같다”고 말하는데, 시청자는 이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습니다.

카르멘(제러미 앨런 화이트·왼쪽)은 처음엔 티나(리자 콜론 자야)를 비롯한 주방 구성원들의 반발을 사지만, 차근차근 주방의 질서를 만들어간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카르멘(제러미 앨런 화이트·왼쪽)은 처음엔 티나(리자 콜론 자야)를 비롯한 주방 구성원들의 반발을 사지만, 차근차근 주방의 질서를 만들어간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지나갑니다” “콩포트 만들어주세요” “비프 네 개요” “내 냄비 건드리지마” 말들이 서로 거칠게 부딪힙니다. 등장인물들이 서로 말싸움이라도 하면 오디오가 제대로 겹칩니다. 드라마는 인물 내면의 불안과 인물간 갈등, 전쟁터 같은 주방의 분위기를 가감없이 드러나게 연출했습니다. 제대로 된 대화는 드물고, 파편적인 화면들이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갑니다. 7화는 한 화 절반이 넘는 분량(18분)을 원테이크로 보여주는데, 차분하게 출근했다가 완전히 폭발해 버리는 카르멘의 심리를 효과적으로 보여줍니다.

카르멘은 탈 많은 주방에서 꿋꿋이 샌드위치를 만듭니다. 여동생의 말대로 “아무도 그러라고 한 적 없”지만 이 식당을 바꿔나가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입니다. 카르멘만의 애도 방식입니다. 카르멘은 최선을 다해 샌드위치를 만들고, 주방의 질서를 차근차근 잡아갑니다. 지시에 따르지 않던 직원들은 카르멘이 만들어 낸 샌드위치를 맛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너무 맛있기 때문이죠. 카르멘이 툭툭 던져주는 조언들을 하나씩 받아들이면서 이들은 점점 일에 성취감과 욕심을 느낍니다. 존중의 의미를 담아 모두를 ‘셰프’라고 부르는 카르멘의 호칭을 귓등으로 듣던 주방 구성원들은, 어느새 서로에게 ‘셰프’라는 말을 돌려주기 시작합니다.

주인공들은 모나고, 제멋대로고, 욕심이 너무 많은 등 제각각 단점 투성이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고 있으면 주인공들에게 점점 정이 갑니다. 카메라는 주방을 잘 떠나지 않고, 각자의 사정은 출근길 모습이나 대화 등을 통해 살짝 드러납니다. 그러나 시청자는 충분히 연민과 공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감정을 완전히 차단해 버린 채로 일에만 열중하는 카르멘도 매력적입니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 캐릭터들이 모든 위기를 극복하고 안정을 찾기를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마지막 화까지 상황이 점점 나빠지는 건지 좋아지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마지막의 마지막에는 정말 멋진 반전이 기다립니다.

지난 6월 처음 공개된 이 시리즈는 영미권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미국 비평사이트 로튼토마토닷컴에서는 최고 점수인 신선도 100%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디즈니플러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시즌 1까지 공개됐고, 총 8화입니다. 각 에피소드는 21~48분으로 짧은 편입니다. 시즌1만으로 기승전결이 확실한 스토리텔링을 보여줬지만 인기에 힘 입어 시즌2 제작도 확정됐습니다.

‘지구 부숨’ 지수 ★★★★★ / 머리는 언제 감은 건지 모르겠지만 너무 매력적인 주인공

방구석 여행 지수 ★★★★ / 시카고 골목을 걷는 주민이 된 것 같은 기분

세계 최고 레스토랑 셰프가 더러운 샌드위치 가게로 온 이유 #shorts #오마주

드라마 <더 베어> 포스터. 사진 크게보기

드라마 <더 베어>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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