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민주항쟁 기념식 공연에 이랑과 늑대의 ‘하울링’이 필요한 이유

위근우 칼럼니스트

귀를 막고 입을 막는다해도…늑대는 언젠가 나타난다

동명의 타이틀곡이 수록된 이랑의 3집 앨범 <늑대가 나타났다>는 지난 3월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반’과 ‘최우수 포크 음반’ 부문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동명의 타이틀곡이 수록된 이랑의 3집 앨범 <늑대가 나타났다>는 지난 3월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반’과 ‘최우수 포크 음반’ 부문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늑대가 나타났다! 양치기 소년은 외쳤다. 하지만 늑대는 오지 않았다. 이솝우화 중에서도 잘 알려진 양치기 소년 이야기다. 흔히 이 우화는 거짓말과 그 대가에 대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또 다른 해석도 해볼 수 있다. 지금이든 나중이든 언젠가 늑대는 나타나며, 소년의 외침은 언제나 불길한 예언일 수밖에 없다는 것. 마을 사람들이 예언을 무시하고 마음 편히 잠을 청한 바로 그 순간 늑대가 나타난 것은 아닐까.

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늑대에 대한 불길한 소식. 지난 11월21일 JTBC 단독 보도에 따르면 행정안전부는 부마민주항쟁 기념식 공연에 섭외된 가수 이랑의 세트 리스트 중 ‘늑대가 나타났다’를 부르지 말아달라고, 대신 ‘상록수’를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심지어 ‘늑대가 나타났다’는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에서 마치 항쟁 당사자들이 겪었던 이야기 같은 만큼 꼭 불러달라고 요청한 곡이었다. 이해도 납득도 할 수 없는 요청을 이랑은 거절했고 결과적으로 그와 연출자는 행사에 교체되고 출연료조차 받지 못했다. 이 사건을 보며 과거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관리를 비롯해 권력의 검열 시도로 읽어낼 이유는 많아 보인다. 그럼에도 행안부 측에선 희망찬 분위기의 선곡을 원했을 뿐 검열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원하는 느낌 혹은 그림을 위해 특정 곡을 배제하는 것에서 이미 검열의 입김을 느낄 수 있지만, 정말 순수한 사전조율의 의도가 가수의 강경함에 꺾였다 가정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부마항쟁 기념식을 희망찬 느낌으로 구성하려는 바로 그 의도에서 이미 국가권력의 강력한 현실조작 의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랑 본인은 경향신문 칼럼에서 “마땅한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사회가 마녀, 폭도, 늑대, 이단 취급할 때, ‘그래, 너희가 그렇게 무서워하는 우리가 나타났다!’고 외치면 되레 가슴이 시원할 것 같았다”고 ‘늑대가 나타났다’를 작사하던 순간을 설명했다. “일하고 걱정하고 노동하고 슬피 울며/ 마음 깊이 웃지 못하는/ 예의 바른 사람들이 뛰기 시작했다/ 이단이 나타났다”(‘늑대가 나타났다’ 중). 엄혹한 유신정권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친 부마항쟁의 투사들 역시 당대의 이단이고, 폭도이고, 늑대였다. 과거의 그들을 지금 이곳에서 어떻게 기념하고 애도해야 할까. 하나는 진보 서사다. 독재는 패배하고 민주화운동은 승리했으며 야만스러운 과거의 어둠은 그 시기를 이겨낸 현재의 빛으로 극복되었다는 서사. 여기서 기념식은 종결된 야만적 과거를 통해 현재진행형의 승리를 한 번 더 증명하기 위한 자리가 된다. 이번 검열 논란에 대해 “기념식이 미래세대와 부마항쟁의 성과를 공유한다는 취지에 부합하도록 밝고 희망찬 분위기의 선곡을 검토해달라는 의견”이었을 뿐이라는 행안부의 입장은 정확히 이러한 진보 서사로 부마항쟁을 기억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다. 다른 하나는 비극 서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다룬 <시학>(이상섭 역)에서 “역사가는 실제로 일어난 사실을 이야기하고 시인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이야기”하기에 “시는 역사보다 더 철학적이며 더 심각하다”고 선언한다. 진보 서사에서의 역사적 악은 이미 지난 과거의 대상이지만, 비극에서의 악은 인간의 보편적 부덕으로서 언제든 다시 도래할 수 있다는 위기감과 현재적 반성을 고양한다.

[위근우의 리플레이]부마민주항쟁 기념식 공연에 이랑과 늑대의 ‘하울링’이 필요한 이유

“ ‘늑대가 나타났다’를 부르지 말라”
행안부가 요청했다는 특정 곡 배제
“밝고 희망찬 선곡”을 원했다기엔
검열·현실조작의 의지가 느껴져

민주화 투쟁으로서 부마항쟁은
반복 가능한 민주주의의 위기를
보편적으로 호명할 수 있는 사건

정치적 투쟁에 대한 진지한 애도는
과거에서 현재를 포착해내는 것

문화사회학자 제프리 알렉산더는 <사회적 삶의 의미: 문화사회학>(박선웅 역)에서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이 처음엔 “이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데 머무르는 대신, 이들의 죽음을 가져왔던 세력인 나치즘을 제거함으로써, 그리고 다시는 나치즘이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세상을 확립시키는 미래를 계획”하는 진보 서사로 구성되었다가 차츰 비극 서사로 구성되며 “역사상의 사건이 아닌 원형”으로서의 악인 ‘홀로코스트’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둘 중 무엇이 더 합리적 접근인지 구분하는 대신 비극 서사의 도덕적 이득을 밝힌다. “비극 서사가 시사하는 것은 진보가 불가능한 것이 되었음이 아니다. 이 서사가 야기한 유익한 효과는 현대인들이 한때 믿었던 것보다 진보의 성취가 훨씬 어렵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것이다. 진보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도덕이 특정한 시대와 공간을 넘어 보편화되어야 한다.” 그러니 부마항쟁 역시 비극 서사로 구성 및 해석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말로는 자유를 수없이 외치지만 정권에 대한 풍자만화를 문화체육관광부 이름으로 비난하고, 대통령의 실언 가능성에 대해 합리적 의구심을 제기했을 뿐인 언론을 취재에서 배제하며, 서울 한복판에서 100명 넘는 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압사당하고도 국가의 책임을 묻기 어려운 시대에, 민주화 투쟁으로서의 부마항쟁은 언제나 반복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보편적 사건으로 호명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 가장 어울리는 곡은 역시 ‘늑대가 나타났다’다.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에서 ‘늑대가 나타났다’ 선곡을 부탁할 땐 정확히 어떤 장면을 의도했던 걸까. 알 수 없지만 우리가 부마항쟁을 지난 시간에 응결된 대상이 아닌 현재적 사건으로 불러올 때 당대의 마녀, 늑대, 이단과 현재의 마녀, 늑대, 이단은 지금 이곳에서 공명할 수 있다. 발터 베냐민은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최성만 역)에서 “역사가 균질하고 공허한 시간을 관통하여 진행해나간다는 생각”에 기댄 인류 진보 서사를 비판하며, “역사는 구성의 대상이며, 이때 구성의 장소는 균질하고 공허한 시간이 아니라 지금시간(Jetztzite)으로 충만된 시간”이라 말한다. “프랑스 혁명은 스스로를 다시 귀환한 로마로 이해”했으며, 로베스피에르는 “이 과거(로마)를 과거의 연속체에서 폭파해내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부마항쟁을 과거의 연속체에서 폭파시킨 뒤 지금시간에서 충만하게 접속할 수 있다. 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수많은 이들이 국가권력과 투쟁한 사건을 현 국가권력의 개선행진의 장식물로 다루는 것과, 그들의 실존을 건 투쟁에서 현재적인 것을 포착해내는 것 중 무엇이 더 투쟁에 대한 애도에 가까운가. 정치적 투쟁에 대한 진지한 애도는 정치적 현재성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이를 탈정치적으로 희석하려는 시도야말로 너무나도 정치적인 의도를 드러낸다. 이 때문에 “밝고 희망찬 선곡”에 대한 행안부의 요청은 문화적 취향의 문제가 아닌, 자신들에게 유리한 특정한 역사적 관점을 강제하고 나머지 시도를 사전에 배제하는 행위다. 나는 여기에 검열이 잘 어울리는 개념이라 생각하지만, 검열이 아니라 해도 상관없다. 검열보다 더 나쁜 무엇에 가깝기 때문이다.

위근우 칼럼니스트

위근우 칼럼니스트

한 곡의 노래를 배제해 하나의 역사적 접근을 통제하려는 행안부의 시도를 비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조금 더 부연하고 싶다. 베냐민은 과거에서 지금시간을 포착하는 민감함에 대해 “과거 속으로 뛰어드는 호랑이의 도약”이라 묘사했다. 우리는 늑대의 도약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늑대는 하울링으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한다. 뺏긴 자로서의 늑대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고, 그들의 과거로 현재의 늑대가 도약하며, 과거의 늑대들도 귀환한다. 앞서 양치기 소년 우화에 대해 이야기했듯, 늑대는 언젠가 나타난다. 이랑의 노랫말은 아마도 누군가에겐 불길한 예언일 것이다. 그 예언을 막을 방법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양치기 혹은 가수의 입을 막는 건 아닐 것이다. 적어도 양치기의 외침에 귀를 기울일 때 그들은 늑대의 습격을 받지 않았다. 거짓말로 치부하거나, 입을 막았으니 됐다고 잠을 청하는 바로 그때, 늑대는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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