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숨 막히는 나라들에선 ‘더러운 공기’마저 차별적이다

임지선 기자

공기 전쟁

베스 가디너 지음·성원 옮김 | 해나무 | 444쪽 | 1만8500원

서울 지역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된 지난 11월 10일 서울 용산구 N서울타워에서 바라본 도심이 뿌옇다. 문재원 기자

서울 지역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된 지난 11월 10일 서울 용산구 N서울타워에서 바라본 도심이 뿌옇다. 문재원 기자

‘런던 스모그’를 겪으며 집필 결심
영·미·인도 등 대기오염 조사
‘더러운 공기’에 노출된 하층민들
약자가 더욱 고통 받는 구조 고발


요즘 아이들이 태생부터 체득한 단어가 있다면 그 중 하나가 ‘미세먼지’일테다. 환경부는 PM 2.5 이하 미세먼지를 초미세먼지로 분류하고 2015년부터 공식적으로 측정하고 발표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눈 뜨자마자 오늘의 미세먼지 앱을 켜서 미세먼지가 ‘좋음’인지 ‘나쁨’인지 확인해달라 하곤 한다. 미세먼지의 농도는 아이들이 놀이터를 갈 수 있는지 없는지 가르는 가늠자이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은 코로나19 이전에 마스크와 이미 하나가 됐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 가장 많이 언급되는 포털 사이트 키워드가 ‘이민’이라는 사실은 미세먼지 문제가 더이상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일만은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공기 전쟁>은 요즘엔 ‘미세먼지’로 더 와닿는 이슈, 전세계에 드리운 대기오염의 문제를 다뤘다. 미국의 환경 저널리스트인 베스 가디너가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공기가 나쁜 나라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현장 보고서이다. 원제는 숨막힌다는 뜻의 ‘Choked’다. “공기는 전세계에서 우리를 조용히 독살하고 있다.”

집필의 단초는 딸 아이였다. AP통신 기자였던 저자는 미국에서 영국 런던으로 이주하면서 런던 스모그를 마주했다. 그는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공기를 혼자서 씻어낼 수는 없는 법. “내 걱정은 분노로 방향을 전환했다. 내 가족이 들이마시는 오염물질이 훨씬 큰 이야기의 한 가닥에 불과했다.” 저자는 영국이 어떻게 희뿌연 스모그에 휩싸이는지 살피고, 매캐한 연기로 뒤덮힌 인도와 석탄 가정 보일러를 집집마다 떼는 폴란드, 미세먼지가 내려앉은 중국까지 직접 발로 찾아간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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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잘못된 정책을 ‘숨막히는 런던’의 원인으로 짚는다. 고효율 모델의 선택을 독려하기 위해 바꾼 런던의 자동차 과세방식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개편된 조세 정책은 사실상 디젤에 인센티브를 주는 역할을 했다. 디젤이 탄소를 적게 배출할지 몰라도 인체를 위협하는 오염 물질의 측면에서는 휘발유보다 심각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세계보건기구는 디젤을 2012년 확실한 발암물질로 승격시켰다. “수십년간 수백만명에게 영향을 미칠 결정을 내리면서 장기적인 관점을 취하지 않았다.”

모두가 똑같이 마시는 ‘더러운’ 공기를 두고 차별성을 논할 수 있을까 싶지만 저자는 인종과 계급의 약자가 더러운 공기의 고통을 더 받는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차별성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나라는 인도다. 저자는 인도를 설명한 부분에선 ‘공중보건 비상사태’라고 표현했다. 델리 시 경계에 있는 1000여개의 벽돌 가마는 끊임없이 연기를 내뿜는다. 벽돌을 굽는 가마 코앞에서 그 연기를 고스란히 들이마시는 이들은 인도의 하층민이다. 하루 4~6시간 가량 화로 앞에서 아버지와 오빠가 먹을 로티 빵을 굽는 사람은 모두 어린 여자 아이들이다. 저자는 특히 인도의 ‘정부 정책 실패’를 언급했다. 환경 법은 오염을 막는 기능을 거의 하지도 못하면서, 그 이행 시기나 이행여부를 결정하는 하급 공무원들이 부패할 기회를 만들어낸다고 꼬집었다.

미국의 소도시도 마찬가지다. 공장형 낙농업이 자리한 미국 캘리포니아의 샌와킨밸리는 미국에서도 가장 공기가 나쁜 도시로 꼽힌다. 소의 거대한 배설물 웅덩이와 들판의 비료에서 나오는 암모니아, 초미세먼지 등은 근처 사는 사람들의 숨통을 조여온다. 이 지역의 조산율은 해당 주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이곳의 농장 노동자 대다수는 이민자들이다. 저자 말대로 더러운 공기의 대가는 가난한 사람이 가장 혹독하게 치른다.

저자는 절망적 상황만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나라들도 소개한다. 저자는 미국의 청정대기법(Clean Air Act)이 제정된 과정을 상세히 취재했다. 법안을 만든 상원의원들의 보좌관을 찾아가 당시 이야기를 들었다. 청정대기법은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보좌관들이 퇴근 후에도 머리를 맞대고 연구했단다. 두 당의 보좌관들은 모든 신차를 5년 이내 더 깨끗하게 만들라는, 즉 매연을 배출하지 않도록 규제한 이 법안을 만들 때 ‘공중보건’을 가장 핵심으로 내세웠다고 회고한다. 이런 규정을 ‘할 수 있다’가 아니라 ‘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산업계에서 ‘어렵다’고 하는 울음소리를 들을 법도 했지만 이들의 요구는 종이 비행기처럼 날려버렸다는 것이다. “법과 규정이 치고 들어오면 회사는 대개 해야 하는 일을 했지만, 자동차업계에 그냥 맡겨두었더라면 미국 공기는 두드러지게 개선되지 못햇을 것이다.”

스모그에 황사까지 겹치면서 ‘엄중 수준’의 대기오염 경보가 발령된 중국 수도 베이징의 톈안먼 광장에서 28일 한 여성이 마스크를 쓴 아기를 안고 있다.  AP 연합뉴스

스모그에 황사까지 겹치면서 ‘엄중 수준’의 대기오염 경보가 발령된 중국 수도 베이징의 톈안먼 광장에서 28일 한 여성이 마스크를 쓴 아기를 안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세먼지 없는 중국 베이징 톈안먼광장 모습. 연합뉴스

미세먼지 없는 중국 베이징 톈안먼광장 모습. 연합뉴스

저자는 한 장을 할애해 중국의 변화를 칭찬한다. 공기질 데이터 공개를 시작으로 석탄 사용 감축 등의 정책 변화를 치켜세운다. 국제 행사 기간 동안 오염 유발 공장에 문을 닫으라고 명령하는 등의 극단적인 조치는 사실 부실한 계획이라고도 지적하지만 중국에서 실제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전히 중국에서 날아오는 미세먼지 영향을 일정 부분 받고 있는 한국으로선 과연 실질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의아한 대목이다. 한국도 자체적 노력을 해야겠지만 국경을 넘나드는 공기의 특성상 미세먼지의 ‘글로벌한’ 특성도 다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저자의 긴 취재 여정은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라고 물으면서 끝난다. 선택은 우리에게 달렸다고 답한다. 여러 숫자와 눈 앞에 보이는 듯한 현장 묘사로 공기 오염, 미세먼지로부터 위협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공기와 관련된 정책 담당자라면 꼭 읽어보길 권한다.

[책과 삶] 숨 막히는 나라들에선 ‘더러운 공기’마저 차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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