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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작가 에리카 산체스 “저항하는 여성들, 그 예민함은 낙인 아닌 재능”

박송이 기자
에세이 <망가지기 쉬운 영혼들>의 작가 에리카 산체스. 동녘 제공

에세이 <망가지기 쉬운 영혼들>의 작가 에리카 산체스. 동녘 제공

인터뷰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이주노동자 딸이자 유색인으로
백인 우월주의 미국서 살아가며
뿌리 깊은 혐오에 맞서온 여정

“절망 속에서 다시 힘이 됐다는
독자들 사연 접할 때 늘 고마움”

“나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동시에 어느 쪽에나 속했다. 지금도 이 모순 속에 살고 있다. 우리는 모두가 다양한 자아를 지닌 다양한 존재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을 잊는 것 같다.”

작가 에리카 산체스의 에세이 <망가지기 쉬운 영혼들>(장상미 옮김·동녘)은 미국에서 여성, 멕시코 이주노동자의 딸, 유색인, 페미니스트, 양극성 장애 환자 등 다양한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산체스는 2017년 시집 <추방의 교훈>을 출간하며 작가로 데뷔했고, 같은 해 출간한 장편소설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로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가 거침없이 과감한 어조로 쓴 에세이는 백인우월주의가 지배하는 남성중심 사회에서 소수자 정체성들을 갖고 살아가는 일에 대해 말한다. 그는 경향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멕시코인의 정체성은 인종·민족적으로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이는 식민주의와 전지구화의 결과물”이라며 “워낙 반듯한 틀에 맞아 들어가기 쉽지 않은 멕시코인이 미국에 살면 혼란이 배가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민족적 기원을 확인하기 위해 DNA 검사를 하는 등 멕시코인 정체성에 큰 의미를 두지만, 멕시코를 낭만화하려는 시도에는 선을 긋는다. 그는 “선주민 사회에서 여성이 처한 현실은 더 복잡하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여성혐오의 뿌리는 깊기 때문에 인간 존재의 근원에서부터 치유해 나가야만 한다”고 말했다.

책의 첫 장인 ‘나의 질이 망가졌을 때’는 10대 때 단순한 질염을 앓는 것만으로도 불안과 죄책감에 시달렸던 경험을 담고 있다. 그는 “여성의 즐거움에 관해 이야기해본 적도 없고, 섹스하는 과정에서 여성이 적극적인 주체일 수 있다고 인정받아본 적도 없다. 학교에서 받는 성교육은 해부학적 지식과 수치심 유발 전술로 가득 차 있었다”며 “이런 해악을 되돌리고 자신이 어떠한 형태로든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확신을 얻기까지 나의 성인기를 전부 쏟아부어야 했다. 이건 내가 유색인 여성으로서 이 나라에서 갖는 지위, 세상에 대해 어떠한 기대를 하도록 키워졌는지에 기인한 결과다”라고 말한다.

책은 “그저 쓰다 버릴 하찮은 존재로 여겨졌던” 멕시코 이주노동자의 딸인 산체스가 주류 사회에 대항하면서 자기 목소리를 내며 살아온 여정을 담았다. 임신중지 경험과 자살충동 등 힘겨웠던 과거에 대한 내밀한 기록도 담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 덕분에 절망 속에서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는 여성 독자들의 사연을 접할 때마다 무엇보다 고맙다고 말했다.

남성중심 질서에 문제를 제기하는 여성들에게 ‘예민하다’는 낙인이 찍히지만, 그는 ‘예민함’은 더 이상 낙인이 아닌 ‘재능’이라고 말한다. “자본주의, 여성혐오, 백인우월주의가 촘촘히 얽힌 사회에 대항해 목소리를 내면 예민하다는 낙인이 찍힙니다. 저는 결점으로 여기던 저의 예민함을 이제는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책을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요. 예민하다는 것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관심을 기울이며 발맞추려 한다는 뜻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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