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를 활극(活劇)처럼 풀어냈다. 체호프의 오리지널리티를 오매불망 사랑하는 애호가들이 보기엔 ‘이게 뭐지?’ 할 수도 있겠다. 애초에 체호프가 원고지에 꾹꾹 눌러 썼던 스토리, 원작에서 보여줬던 인물들의 성격과 심리, 그것들로 이뤄지는 극적 짜임새가 때로는 약간씩, 또 때로는 심하게 비틀린 까닭이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연희단거리패의 <갈매기>는 볼 만하다.
배우에서 시작해 연출로까지 넘어온 김소희는 다소 엉뚱하면서도 ‘연극적 재미’가 쏠쏠한 <갈매기>를 펼쳐냈다. 이를테면 러시아풍의 잿빛 우울은 라틴적 색채로 전환된다. 아르카지나의 거실에 모여든 사람들이 3박자의 원무를 추는 순간, 극장은 원색의 리듬으로 출렁인다. 게다가 이 리듬의 향연은 극의 시종을 휘감으며 하나의 구조로 작동한다. 캐릭터의 전환도 흥미롭다. 원작과 달리 고상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르카지나는 아들 코스차를 향해 “거지새끼”라 욕하고, 아들은 “창녀!”라고 응수하며 한바탕 난투극을 벌인다. 지적이고 심약한 트리고린은 능청스러운 개그맨에 가깝게 변신했다.
김소희의 연출적 매뉴얼은 스승 이윤택의 에너지를 계승한 것처럼 보이지만, 스승보다 한층 섬세한 측면을 드러낸다. 적어도 <갈매기>에서는 ‘청출어람’을 떠올리게 한다. 이 독특하고 재미있는 <갈매기>는 26일까지 대학로 게릴라극장에서 관객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