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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없는 여성혐오…산으로 가는 ‘남녀 차별 토론’

위근우 칼럼니스트

EBS ‘까칠남녀’와 정영진

남성의 데이트 비용 부담에 대해 “여성들이 ‘내가 이만큼 놀아줬으니까 경제적 보답을 해줘야 해’라는 건 넓은 의미의 매춘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 정영진씨의 발언은 성매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전제로 한 논리의 비약이다.

남성의 데이트 비용 부담에 대해 “여성들이 ‘내가 이만큼 놀아줬으니까 경제적 보답을 해줘야 해’라는 건 넓은 의미의 매춘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 정영진씨의 발언은 성매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전제로 한 논리의 비약이다.

A/S가 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젠더 토크쇼를 표방하는 EBS <까칠남녀>는 지난 7월10일 ‘우리 패널 이대로? A/S 특집’ 편을 통해 일종의 자체 중간점검에 들어갔다. 해당 방송에서 스스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부정적 평가를 받는다고 자조하던 패널 정영진은 약 한 달이 지나 ‘남자들이여, 일어나라’ 편에서 데이트 비용에 대해 “내가(여성이) 이만큼 놀아줬으니까 이만큼 (남자가 경제적 보답을) 해줘야 해, 라는 건 넓은 의미의 매춘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해당 회차에서 남성들이 받는 역차별을 토로하기 위해 나왔던 개그맨 황현희조차 당황할 정도로 높은 수위의 표현에 대해 역시 남성 패널인 봉만대를 비롯한 모든 패널과 MC가 비난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꿋꿋했다.

어떤 형식적 유사성만으로 A는 B와 같다고 말하는 것은 논증을 비유로 대체하는 오류이고, <까칠남녀> 패널 손희정이 지적한 대로 “남녀가 동등한 경제력을 갖출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게 먼저”이며, 해당 발언은 성노동자가 아닌 불특정 다수 여성뿐 아니라 극한 환경에서 말 그대로 인간이 아닌 상품 취급당하며 생존과 실존의 위기를 겪는 성노동자에 대한 모욕이다. 데이트 비용을 성매매와 연결시키는 것부터 논리의 비약이지만, 그 밑에 깔린, 성매매는 여성이 쉽게 돈 버는 수단이라는 전제부터 명백히 실제 사실과 다르며 여성혐오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반박 앞에서 그가 발언을 철회하고 사과하고 개선할 것 같지는 않다. 다시 말하지만 A/S가 안되는 사람도 있다.

정영진이 <까칠남녀>에서 지금껏 했던 위와 흡사한 발언들을 소개하고 비판하는 것만으로도 이 지면을 채우는 건 충분하다. 몰래카메라 문제를 다룬 ‘내 몸이 떠돌고 있다’ 편에선 남성의 성적 욕망을 억압할수록 더 자극적인 것을 찾기 때문에 포르노를 합법화하고 몰래카메라나 미성년자 포르노를 엄격히 규제하는 게 낫다고 했다. P2P로 얼마든지 해외 포르노를 다운받을 수 있는 한국에서 이미 실증적으로도 틀린 전제지만, 몰래카메라는 단순히 성욕 이상의 비뚤어진 지배욕 문제이며, 또한 남성의 성욕을 당연히 충족되어야 하는 기본권으로 전제하고 전개하는 논변도 잘못됐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그가 잘못된 논거에 기댄 실천적 여성혐오 발언을 많이 했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첫 방송부터 지금까지 프로그램 내부에서 그리고 외부에서 비판받고 반박당하면서도 자신의 견해를 조금도 수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젠더 토크쇼 패널로서 커다란 결격 사유다. 대화와 토론의 규범적 전제를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그렇다.

“남성은 성적 욕망을 억압할수록 더 자극적인 것을 찾기 때문에 (몰래카메라 문제를 해결하려면) 포르노를 합법화하는 게 낫다”는 그의 주장은 남성의 성욕을 당연히 충족되어야 하는 기본권으로 전제한 잘못된 논변이다.

“남성은 성적 욕망을 억압할수록 더 자극적인 것을 찾기 때문에 (몰래카메라 문제를 해결하려면) 포르노를 합법화하는 게 낫다”는 그의 주장은 남성의 성욕을 당연히 충족되어야 하는 기본권으로 전제한 잘못된 논변이다.

tvN <알쓸신잡>에서 작가 유시민은 정치적 토론에 대해 이야기하며 “논리적으로 부딪치는 두 입장이 있는데 두 입장 사이에서 (의견을) 주고받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 틀린 말이다. 설령 그것이 경험적 사실에 가까울지언정 더 나은 논증적 주장을 통해 합의에 이를 수 있다는 규범적 기대가 없다면 굳이 논변을 행할 이유도 없고, 사안의 옳고 그름을 따질 이유도 없다. 하여 <까칠남녀>에서의 정영진은 단지 좀 더 남성의 입장에서 발언하고 그 안에서 여성 패널과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대화 참여자라기보다는, 방송에서 다루는 사회적 부정의로서의 여성혐오와 여성차별이란 현상 자체를 부정하는 남성들의 마이크에 가까운 존재다. 이것은 젠더 토크쇼로서의 균형이 아니다. 여성 입장이 다뤄지는 만큼 남성 입장도 들어봐야 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는 실제로 이 쇼에서 벌어지는 대립각의 근본 문제를 은폐한다.

실제 정영진의 발화가 만들어내는 것은 여성 대 남성의 대립이 아니라, 페미니즘 대 여성혐오의 대립이다. 이것이 과연 동등하게 다뤄질 수 있는 대립각일까. 여성혐오라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편견과 불의 위에서 사회적으로 그동안 묵인돼오던 성별 간 불평등의 문제를 바로잡고 진정한 균형을 만들려는 노력이 페미니즘이다. 진화론과 창조과학 사이의 균형이 기만이고, 역사학과 환단고기 사이의 균형이 기만이며, 정치적 자유주의와 전체주의 사이의 균형이 기만인 것처럼 페미니즘 대 여성혐오 사이의 균형 역시 기만이다. 아무리 프로그램 안에서 여성 패널이 매섭게 반박한다 해도 이미 그 대결 구도가 이 둘이 동등하게 다뤄져도 되는 관계인 것 같은 환상을 만들어낸다. 대화 참여자로서 정영진의 문제는, 그래서 그대로 그런 포지션을 주고 그것으로 남녀 의견의 균형을 맞추려는 <까칠남녀>의 문제이기도 하다.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해서는 “남성중심적인 직장생활에서 배워온 그들만의 문화로 생각해달라. 안쓰러운 느낌이 있다. 어쨌든 그분도 누군가의 아버지이며 아들”이라고 말해 가해자에게만 관대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해서는 “남성중심적인 직장생활에서 배워온 그들만의 문화로 생각해달라. 안쓰러운 느낌이 있다. 어쨌든 그분도 누군가의 아버지이며 아들”이라고 말해 가해자에게만 관대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현재 <까칠남녀>에서 정영진의 포지션에 대한 유일하게 의미 있는 변호는 ‘A/S 특집’에서 정영진의 아내가 해줬다. “(정영진을 통해) 남성들이 어떤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고 우리가 어떻게 바꿔줘야겠다고 알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그나마 프로그램 안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 그의 자리일 것이다. 이것은 정영진의 잘못된 발언이 잘못된 것이라는 프로그램 안과 바깥의 합의 위에서만 어느 정도 원하는 실천적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실제 프로그램 게시판이나 기사 댓글에서 볼 수 있듯, 오히려 상당수 남성들은 정영진의 논리(라고 이름 붙여도 된다면)에 동조하고 종종 환호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마이크가 되고 증폭기가 될 뿐이다.

이러한 배경 위에서 실제로 <까칠남녀>가 증명하는 것은 이처럼 젠더 토크쇼에서 꾸준히 여성혐오적인 발언을 하고 개선하지 않아도 자기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남성 방송인의 권력이다. 과연 이것이 스스로를 소개하듯 ‘차별에 화난 남녀들의 용감한 토크쇼’일까.

본인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겠지만, 정영진은 앞서의 ‘A/S 특집’에서 프로그램을 위해 정말 중요한 제언을 했다.

“지금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너무 심하고 남녀차별이 너무 심하니까 이거 얘기하는 프로로 가자고 하면 <까칠녀>로 가야죠.”

[위근우의 리플레이]브레이크 없는 여성혐오…산으로 가는 ‘남녀 차별 토론’

훌륭하다. 남성 페미니스트로서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서민 교수나 프로그램 안에서 조금씩 인식적 혼돈을 느끼며 변화해가는 봉만대 감독 같은 남성 패널의 유효함이 있겠지만, 사실 젠더 간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하려던 <까칠남녀>에 필요했던 것이 기계적 성비 균형은 아니었을 것이다. 거의 모든 예능과 토크쇼가 남성에게 마이크를 쥐여주는 이곳에서 진정한 균형은, 진정 차별에 저항하는 것은, 여성의 목소리에 좀 더 제대로 힘을 실어주는 것을 통해 가능하지 않을까. 당장 정영진을 비롯한 남성 패널을 정리하라는 주문은 아니다. 다만 이토록 흥미롭고 유의미한 기획임에도 기계적 성비 균형과 의견 균형에 대한 강박으로 쇼 안에서 야만적인 발언이 허용되고 동등하게 다뤄지게 된 것에 대해 제작진이야말로 성찰적인 중간점검과 A/S가 필요해 보인다.

정영진을 통해 <까칠남녀>가 여성들에게 보낼 수 있는 단 하나의 유효한 메시지는 정치적 진보를 자처하는 남성 지식인이라 해도 여성혐오 문제에서만큼은 철저히 보수적이거나 이중적이니 진보 남성이라고 큰 기대를 하지는 말라는 것뿐이다. 물론, 여성들이 그걸 모르겠느냐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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