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읽고 전시회 초대권 받자!
책과 삶

전쟁통 같은 응급실, 눈물의 병실…수수한 일러스트로 만나는 ‘병원 일기’

박경은 기자

병원의 사생활

김정욱 지음 | 글항아리 | 344쪽 | 1만6000원

[책과 삶]전쟁통 같은 응급실, 눈물의 병실…수수한 일러스트로 만나는 ‘병원 일기’

수없이 만들어지는 의학 드라마가 늘 높은 시청률을 얻는 것은 생과 삶이 교차하며 빚어내는 긴박감과 극성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첫인상만으로도 독자들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수술대 위에서 기록한 신경외과 의사의 그림일기’라는 부제. 우리 몸 어느 곳 하나 소중하지 않은 곳이 없겠지만 환부로서의 ‘뇌’를 발화하는 순간 들이닥치는 두려움은 다른 부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신경외과 레지던트 4년차인 저자가 그동안 ‘뇌’를 대상으로 수술이 벌어지는 병동에서 수련하며 보고 듣고 느낀 기록들이라면 한번쯤은 읽어보고 싶을 법한 이야깃거리다.

호기심을 더 자극하는 것은 표지를 장식한 그림이다. 지그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수술모·마스크 차림의 의사. 표지를 마주하는 순간 수술방에 누워 있는 듯한 느낌이 스치고 지나간다. 책에 실린 일러스트는 모두 70여컷. 전쟁통이나 다름없을 법한 응급실과 수술실에서, 눈물과 한숨이 뒤섞인 병실과 복도에서 저자의 시선에 포착된 사람들의 모습과 풍경들이다. 뇌종양에 걸려 10개월의 짧은 삶을 마무리하고 떠난 아기의 무표정하고 맑은 얼굴엔 의사로서의 무력감과 자책감이 배어 있다. 투박하고 거칠게 주름진, 공손하게 모은 누군가의 두 손을 그리며 저자는 초심과 겸손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을 꾹꾹 눌러 담았다.

[책과 삶]전쟁통 같은 응급실, 눈물의 병실…수수한 일러스트로 만나는 ‘병원 일기’

많은 그림들 중에서도 잔상이 남는 것은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는 누군가의 볼품없고 앙상한 맨발이다. 그저 그렇게 흘려 넘길 법한, 신경조차 쓰지 않을 흔한 장면을 저자는 위로와 공감의 시선으로 포착해 냈다. 이 그림의 장면이 됐던 그 순간은 저자가 인턴시절이던 어느 날이었고, 그날의 깨달음은 이 같은 형태의 병원 일기를 쓰게 된 계기가 됐다.

“왜 저 사람은 맨발인 채 덩그러니 누워 있을까. 그 조차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아픈 걸까. 순간 내가 그의 낯선 모습만을 주시할 뿐 그의 심경이 어떠한가를 살피지 못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응급실은 그처럼 환자가 통증과 수치심을 교환하는 곳이다. 그런 나는 스스로가 생각해도 끔찍했고 그걸 잊지 않기 위해 얼른 그림으로 남겼다.”

그래서일까. 그의 그림은 수수하고 진솔한 글에 온기를 더해준다. 그리고 누구나 마음속으로 바랄지 모르겠다. 이런 시선으로 나를 봐줄 의사를 만나고 싶다고 말이다.


Today`s HOT
정부 원주민 정책 비판하는 뉴질랜드 시위대 타히티에서 서핑 연습하는 서퍼들 뉴욕 법원 밖 트럼프 지지자들 중국-아랍국가 협력포럼 개최
abcd, 스펠링 비 대회 셰인바움 후보 유세장에 모인 인파
의회개혁법 통과 항의하는 대만 여당 지지자들 주식인 양파 선별하는 인도 농부들
남아공 총선 시작 살인적 더위의 인도 이스라엘 규탄하는 멕시코 시위대 치솟는 아이슬란드 용암 분수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