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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두 남자의 서울자랑, 유홍준 교수와 박원순 서울시장

백승찬 기자

서울을 잘 아는 두 남자가 만났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최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창비) 서울편 1, 2를 펴낸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다. 재선의 서울시장과 출간 열흘만에 10만부를 판매한 저자의 ‘서울 자랑’은 끝이 없었다. 박 시장은 “서울편은 10권은 쓰셔야 한다”고 권했고, 유 교수는 “내가 ‘바꿔야 한다’고 쓰기 전에 박 시장이 먼저 바꾸니 쓸 수가 없다”고 화답했다. 4일 서울시장실에서 만난 두 남자의 서울 사랑 이야기를 들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오른쪽)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4일 오후 서울시청 시장집무실에서 대담을 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오른쪽)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4일 오후 서울시청 시장집무실에서 대담을 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서울의 문화유산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곳

박원순 시장 : “이상한 질문이네요. ‘열 손가락’ 아닙니까. 한양도성 관련해 세 권의 파일이 있을 정도로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한양도성 주변 골목 정리하고 박물관, 연구소 만들어 애착 기울였는데 여전히 할 일이 산더미입니다. 또 폼페이 이상의 유적인 풍납토성도 있습니다.”

유홍준 교수 : “한양도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지 못한 것이 아쉽죠. 도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설득시키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한양도성은 전쟁이 아니라 수도 서울의 권위를 위해 쌓았습니다. ‘포트리스’가 아니라 ‘시티월’이란 거죠. 한양도성 등재보다 어려운 건 묵은 동네들, 가회동이나 북촌, 서촌 정비죠. 현재 주민 동의 얻어 슬기롭게 진행하고 있어요. 세번째 편은 인사동, 가회동, 통인동 같은 ‘내고향 서울’ 이야기인데, 박 시장이 도시재생한다고 자꾸 바꿔놓아서 이번에 못썼어요.”

박 시장 : “밤새워 빨리 쓰세요(웃음). 지금 문서 창고에 서울 요소요소의 재생계획이 다 있습니다. 낙원상가, 인사동, 익선동의 남은 한옥들, 국악로, 세운상가, 율곡로…. 계속 하고 있는거죠. 100년은 더 해야 하는데 기다리실 수 있겠어요, 답사기 서울편은 (예정하신) 네 권으로 절대 끝나지 않습니다. 10권은 쓰셔야 합니다.”

유 교수 : “딴 사람도 쓰게 둬야지, 내가 빗자루질로 낙엽까지 쓸어버리면…. 한성백제 500년, 한양도성 600년의 역사가 있지만, 서울의 1차적 임팩트는 역시 궁궐과 종묘입니다. 유커들이 서울에 왔을 때 문화유산과 연계해 갈만한 곳을 제시했으면 좋겠어요. 전 이런 예를 듭니다. 1984년 고르바초프가 영국을 방문했을 때예요. 국빈의 방문 장소가 무척 중요한데, 소련과 영국이 오랫동안 싸운 와중에 국립묘지에 갈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영국이 고르바초프를 영국도서관으로 안내합니다. 거기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쓰던 자리가 있거든요. 이렇게 문화유산은 관광자원도 되고, 여러 나라의 외교적 친연성도 느끼게 합니다. 관우를 모신 사당인 동관왕묘만 봐도 그렇습니다. 중국인들의 관우 신앙이 어마어하니, 여기서 향만 팔아도 엄청난 수익이 날겁니다.”

박 시장 : “교수님이 쓰실 책 제안을 또 드리면, 제가 지리산에서부터 백두대간을 타고 주욱 올라왔습니다. 한반도 동남부의 신라가 이걸 뚫으려고 무지 노력했어요. 그래서 개척한 곳이 하늘재, 즉 신라국도 1번지입니다. 이걸 타고 넘으면 충주죠. 그러면 남한강에서 배로 한강까지, 또 중국으로 연결되죠. 한강을 중심으로 한 서울은 고대왕국들이 쟁투를 벌였던 중요한 장소입니다. 한성백제 500년 말기에 고구려가 내려오면서 개로왕이 처형되고 백제는 웅진(공주)으로 천도하죠. 그러면서 백제는 멸망의 문명이 정해졌습니다. 이렇게 서울이 중요합니다. 백두대간 걸으면서 한반도의 전략적 위상에 대해 굉장히 많이 깨달았습니다.”

유 교수 : “그때 그냥 걸어가지 수염 달고 서울시장 나와서….(좌중웃음)”

박원순 서울시장(오른쪽)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4일 오후 서울시청 시장집무실에서 대담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오른쪽)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4일 오후 서울시청 시장집무실에서 대담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개발의 욕망이 끓어넘치는 서울

박 시장 : “제가 시장으로 있는한 여기 있는 건 다 보존하면서 그 바탕으로 새 시대를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옛날에는 낡았으면 없애고 다시 지었습니다. 우리는 고쳐서 다시 씁니다. 한양도성 주변 23개 망루처럼, 곳곳의 삶과 주거지와 이야기를 복원하면서 현대를 건설할 겁니다.”

유 교수 : “100년 후에는 김현옥 시장의 불도저 개발이 한 편으로 기억되고, 박원순 시장의 도시재생이 또 하나의 모멘텀으로 기억될 겁니다.”

박 시장 : “물론 한 시대가 전환되는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지금이야말로 과거의 전면철거 방식에서 점진적 수복형으로 바꿀 때입니다. 그것을 바라는 시민이 다수입니다. 뉴욕이나 런던, 파리는 우리의 모델이 아닙니다. 우리 선조들이 쌓은 바탕 위에 세월과 시민이 함께 축적하는 도시여야 합니다.”

유 교수 : “일에는 임자가 있습니다. 대선 과정의 ‘광화문 대통령 공약 기획위원회’ 위원장으로 말씀드리면, 서울의 계획은 서울시가 주도해야 합니다. 정부는 거기 협조할 뿐입니다.”

박 시장 : “중앙정부는 큰 틀의 가이드라인이나 지원계획이 있을 뿐, 실제 현장에서 할 일은 지방정부에 맡겨야 합니다. 용산에 국립공원이 생기지만, 정부는 이런 공원을 운영해본 경험이 없습니다. 서울시나 다른 민간 기관에 계획 수립을 위탁해야 합니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도 서울시가 하고 중앙정부는 지원해야 합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4일 오후 서울시청 시장집무실에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과 대담을 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이 4일 오후 서울시청 시장집무실에서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과 대담을 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조선의 도시계획에서 배울 점.

유 교수 : “정도전이 경복궁을 설계해서 시공할 때까지 2년밖에 안걸렸습니다.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중장비도 없는데 어떻게 그리 빨리 만들었을까…. 설계하고 시공할 때는 자연의 리듬을 이용했습니다. 조선의 도시계획은 중국 주례의 고공기를 적용했습니다. ‘도시는 이렇게 생겨야 한다’는 룰이죠. 그런데 그 룰을 그대로 따른게 아니라 굴곡이 많은 인왕산, 북악산에 적용했어요. 고공기를 벤치마크했지만 우리의 자연 속에서 우리 식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자랑이죠.”

박 시장 : “서울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도시입니다. 서양의 도시는 다 평야에 있습니다. 서울은 완전히 산악도시입니다. 자연을 잘 활용해 조화로워서 더욱 빛납니다.”

유 교수 : “서울이 조선왕조 끝나고도 근대사회의 수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강남이 있어서입니다. 아테네나 로마는 그게 없어서 확장할 수가 없습니다. 서울은 무한대로 넓혀지죠. 다리만 놓으면 되니까. 서울은 천혜의 땅이고,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이 자리를 점지한 조상에게 고맙습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4일 오후 서울시청 시장집무실에서 박원순 시장과 대담을 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4일 오후 서울시청 시장집무실에서 박원순 시장과 대담을 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문화재 보존과 활용의 균형

유 교수 : “제가 지금까지 서울에 대해 쓰지 않고 지방을 돌았던건 서울에 대한 불만이 많아서였어요. 문화유산은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궁을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얼마 되지 않았어요. 공무원에게 제일 쉬운게 ‘출입금지’예요. 망가져도 들키지 않으니까.”

박 시장 : “시민들의 이용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밥해먹고 살 수는 없겠지만, 서울시가 관리하는 운현궁만 해도 일상적 삶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방안을 궁리중입니다. 한양도성의 순성놀이(하루 만에 도성을 한 바퀴 도는 것)도 그런 차원입니다. 문화유산을 통한 스토리텔링입니다.”

유 교수 : “시장님 만난김에 부탁하면, 지금 무료입장하는 운현궁에 1000원만 받으면 안될까요. 무료라고 하면 가치가 없는 줄 알아요. 수강료가 세야 열심히 수업을 듣듯이, 기본요금을 내야 잘 살펴요.”

박 시장 : “유료화하면 내년 지방선거에 지장이 있으니까 조금 고민해보겠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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