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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거짓 역사위에 세워진 이스라엘

박경은 기자

팔레스타인 비극사

일란 파페 지음·유강은 옮김 | 열린책들 | 568쪽 | 2만5000원

지난 8월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기구(UNRWA)가 제공한 구호식량 더미 옆에 앉아 있다. AFP 연합뉴스

지난 8월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기구(UNRWA)가 제공한 구호식량 더미 옆에 앉아 있다. AFP 연합뉴스

국제 뉴스에서 가장 자주 접하는 사안 중 하나는 ‘중동분쟁’이다. 중동분쟁 하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갈등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이는 오늘날 중동분쟁의 ‘원죄’와도 같다. 이 ‘원죄’의 실체는 무엇일까.

친이스라엘적 시각이 오랫동안 지배한 서구에서 이 실체는 상당히 왜곡된 상태로 전파돼 있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윗 이스라엘과 골리앗 아랍 간의 대결이라는 뿌리 깊은 이미지 위에 팔레스타인은 평화를 해치는 테러리스트라는 오명까지 덧쓰고 있다.

[책과 삶]거짓 역사위에 세워진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비극사>는 이 같은 원죄의 실체를 밝히는 책이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에 관한 단순하면서도 끔찍한 이야기”다. 이스라엘이 건국된 1948년을 전후한 시기에 이 지역에서 벌어졌던 일을 집중적으로 살피고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그 실체는 ‘다윗 팔레스타인과 골리앗 이스라엘’의 대결과 갈등이다. 아무것도 없는 불모의 땅을 녹음이 우거진 풍요의 땅으로 바꿨다는 서사의 이스라엘 건국신화는 날조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스라엘을 건국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단지 그 땅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종족 청소’라는 이름의 살상과 추방을 당해야 했다. 그리고 그 범죄는 진실을 은폐하며 세상을 기만해 온 이스라엘 때문에 대중의 기억에서 거의 지워졌다. 범죄로 인정받기는커녕 역사적 사실로도 인정되지 않는다.

배타적인 유대국가 건설의 바탕이 된 ‘시오니즘’은 1880년대 중부유럽과 동유럽에서 민족부흥운동으로 등장해 20세기 들어 ‘팔레스타인 정복’이라는 목표로 굳어진다.

특정 민족의 구상에 머물던 이 계획이 구체화된 계기는 1917년 영국 외무장관 벨푸어의 선언이다. 당시 영국이 점령하고 있던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민족의 나라를 세우게 해주겠다는 약속이었다. 이 선언은 당시 토착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팔레스타인은 1936년 영국을 상대로 대규모 봉기를 일으켰고 그 결과 무자비하게 진압되면서 사실상 지도부와 생존력있는 전투조직은 소멸되고 만다. 군사적으로 무주공산과도 같은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 건국 세력에게 ‘청소’의 대상이 됐고 그 결과 ‘데이르야신 학살사건’(1948년 4월)과 같은, 대중 역사서에 등장하지 않는 수많은 학살사건이 벌어졌다. 불과 몇년 전 홀로코스트를 겪었던 비극의 주인공들이 반대로 자행하는 홀로코스트였던 셈이다. 용케 살아 남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요르단강 서안 일부와 가자지구라는 좁은 땅에서 식민지 주민으로 살아오고 있는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이 때문에 1948년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아직도 진행 중인 과제이자 분쟁의 핵심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를 ‘나크바’, 즉 재앙이라고 일컫는다.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진실은 일관된 삶의 궤적을 보여온 저자에 의해 더욱 설득력있고 무겁게 다가온다. 현재 영국 엑시터대에서 역사학을 가르치고 있는 일란 파페는 나치의 억압을 피해 독일에서 이스라엘로 건너온 정통·주류 유대인 가정에서 자랐다. 히브리대학을 거쳐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역사학계에서 모국 이스라엘의 주류 역사관에 대항하며 비윤리적 건국 과정을 고발해 왔다. 이스라엘의 탄생은 법적·도덕적으로 부당하다고 주장해 온 그는 거듭되는 협박과 살해 위협에 시달렸으며 결국 23년간 머물렀던 이스라엘 하이파대학에서 파면당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는 역사 바로 세우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허구의 역사에 근거한 자기기만을 벗어던지고 과거의 만행에 대한 법적·도덕적 책임을 지는 것이 선행되어야만 유대인과 아랍인의 평화적 공존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변화할 수 있을까. 파페는 “이스라엘은 언젠가 시민 중심의 민주주의 국가로 자발적으로 변신하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서 변화의 가능성은 있다고 희망을 내비친다. “이스라엘 유대인 사회에서 시온주의 사회 공학이 아니라 인간적 고려를 밑바탕으로 삼아 자신을 형성하는 집단들을 들여다보면, 수십년에 걸친 이스라엘의 야만적인 점령에 의해 비인간화되기를 스스로 거부하고 여전히 화해를 꿈꾸는 수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을 볼 때 평화가 머지 않았음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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