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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내’와 ‘욜로’ 이분법으로 청년을 보려는 세상에 “스튜핏!”

이로사 칼럼니스트

KBS2 ‘김생민의 영수증’

<김생민의 영수증>에 대한 반응은 신기할 정도로 극명히 갈린다. 너무 재미있고 유익하다는 사람, 불편해서 도저히 못 들어주겠다는 사람.

[이로사의 신콜렉터]‘짠내’와 ‘욜로’ 이분법으로 청년을 보려는 세상에 “스튜핏!”

전자는 불필요한 걸 소비할 때마다 김생민의 ‘스튜핏(stupid)!’ 환청이 들리며, ‘절약생활에 자괴감을 느낄 때쯤 생민복음을 듣고 마음을 다잡는다’고 말한다. 후자는 ‘돈은 쓰려고 버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자신은 ‘적당히 벌어 적당히 쓰는’ 태도를 유지할 것이며 ‘이제 아프니까 청춘 대신 안 쓰니까 청춘이냐’라거나 ‘시발비용(홧김비용), 저축하지 않는 삶, 결혼하지 않는 삶을 후려치는’ 그의 이야기를 듣기 싫다고 말한다.

그것은 말하자면 저성장 시대인 지금을 사는 청년들의 양극단 삶의 방식·가치관의 대결이자, 자본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하나의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전자와 후자의 마음은 서로 많이 다른 걸까?

생민한 하루

<김생민의 영수증>의 시작은 2년 전 팟캐스트 송은이·김숙의 <비밀보장> 초창기 에피소드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밀보장>의 ‘경제자문위원’이었던 김생민은 스튜디오에 출연해 대학교 3학년 남학생이 보낸 ‘어렵게 모은 740만원 어떻게 쓸까’라는 사연의 상담자로 나섰다.

김생민: 여기 ‘어디에 쓰면 돈을 잘 썼다는 소리를 들을까요?’라는 부분은 없어야 해요.

김숙: (의아해하며) 아니, 없어야 한다니요. 왜죠?

김생민: ‘어디에 쓰면 돈을 잘 썼다…’ 여기에 형광펜으로 표시를 하셔야 해요. 돈은, ‘안 쓰는’ 겁니다.

송은이, 김숙: (폭소)

지금 화제의 중심인 <김생민의 영수증>의 복음과도 같은 문구, ‘돈은 안 쓰는 것이다’는 이때 처음 탄생했다. 그때만 해도 김생민의 경제 상담은 “우리 방송이 세미나냐” “자기만 알고 있는 경제 얘기 중” 같은 말로 ‘노잼’ 취급을 당했다. 그러나 30~40대 청취자들의 반응은 의외로 좋았다. 그들은 느슨한 소비패턴을 팽팽히 당겨 차를 사거나, 여행을 가거나, 아이 양육비에 보태거나, 전세자금을 마련하기를 원했다. 김생민의 과장된 극약처방과 독설을 듣고 싶어 했다.

이후 <비밀보장>은 ‘가족사랑 내집 장만 경제 특강’ ‘돈 다 쓰고 개털된 당신을 위한! 설 애프터 김생민 경제상담 특집’ 등을 마련했고, 역시 좋은 반응을 얻어 파일럿 코너로 통장요정 김생민의 영수증 상담 코너를 따로 만들었다. 사연자가 자신의 지출 내역 영수증을 보내면 김생민이 그것을 분석해 일침을 하는 ‘청취자 1:1 맞춤형 재무상담’을 표방한 코너였다.

그는 사연자의 불필요한 소비 내역을 보면 ‘스튜핏!’을, 짠돌이 소비를 하거나 적금 목록이 나오면 ‘그뤠잇(great)!’을 외쳤다. 특유의 강연자 톤으로 ‘안 사야죠’ ‘기본적으로 나에게 커피란 무엇인가 생각해보라’ ‘쿠키가 뭐죠? 쿠키를 사요? 쿠키를 사먹습니까?’ ‘가능하면 혼자 다녀라’ ‘필라테스 대신 어깨 펴고 산책해라’ ‘(충동구매 대신) 충동적금’ ‘절실함 이즈 베뤼 임폴턴트’ ‘만원 언더’ 등 수많은 어록을 만들어냈다.

급기야 이 코너는 지난 6월 <김생민의 영수증>이라는 독립 팟캐스트로 떨어져 나왔고, 지난 8월19일부터는 ‘15분짜리 예능’이라는 파격적인 편성과 함께 지상파 방송(KBS2)에 입성하기에 이르렀다. 커피 대신 면수를 마시고 햄버거 대신 떡을 먹는 등 절약하는 태도를 가리키는 ‘생민하다’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김생민 팬카페의 ‘생민한 하루’ 게시판에는 소비를 최소화한 하루를 보냈거나 할인과 충동구매의 유혹을 이겨낸 수많은 ‘간증’들이 올라온다.

검은 웃음

그러나 따지고 보면 <김생민의 영수증>은 블랙유머에 가깝다. 그가 유발하는 웃음은 자조적이다. 현실성이 짙으며 어딘지 불길하고 우울하다. 이 다크함은, 긍정의 힘을 믿은 자린고비형 성공담으로 ‘10년 동안 10억 모으기’ 재테크 강연을 해온 김생민 자신에게서 비롯하지 않는다. 그보다 20~40대가 대다수인 많은 청취자들이 그 웃음을 수용하는 방식에서 비롯한다.

그들은 김생민의 조언을 들으며 우선순위 바깥의 소비에 죄책감을 갖고, 최대한 적금에 넣는 돈을 확보하려 하며, 그것을 통해 부자의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듯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 대부분은 아무리 ‘스튜핏’을 외쳐도 그런 미래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김생민처럼 10억원을 모으겠다는 꿈은 꿔도 그것을 목표로 삼지는 않는다. 이들의 목표는 전세대출금을 갚거나 백수생활 동안 있는 돈을 탕진하지 않거나 맞벌이 생활에서 적자를 내지 않는 것 정도다.

[이로사의 신콜렉터]‘짠내’와 ‘욜로’ 이분법으로 청년을 보려는 세상에 “스튜핏!”

이들은 자신의 소비패턴이 웃음의 소재가 되는 것을 즐긴다. 그것은 꾸준함과 성실함만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김생민의 ‘절실함’에 동지의식을 느끼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삶과 동떨어져 과소비만 조장하는 한국형 ‘욜로’에 과감히 ‘스튜핏’을 날린 대항마로 ‘생민함’을 추어올린다. 그 속에서 누군가는 그가 타워팰리스에 살고 벤츠를 탄다는 사실에 ‘역시 인생은 탕진잼’이라고 자조적으로 웃으며 돌아서기도 한다.

반면 미래를 도모하기 어려워 눈앞의 삶의 질을 추구하는 쪽의 가치관을 갖고 사는 많은 청년들(원래 뜻대로라면 그것을 ‘욜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에게 김생민의 영수증 개그는 또 다른 폭력으로 느껴진다. 김생민이 설파하는 경제관념은 사실 지금의 30~40대가 아버지에게 귀에 못이 박이도록 많이 들었을 법한 것이다. 아껴야 잘산다. 노동과 저축이 너희를 구원하리라. 지금 성실하고 꾸준히 벌면 미래에 성공할 수 있다.

김생민은 웃음을 위해 극단적인 말을 일삼기 때문에, 자세히 듣지 않으면 그의 말은 현재의 행복 따위는 포기하고 오직 돈 버는 기계처럼 살라는 말 같다. 무엇을 위해? 그것은 노동 자체가 그 의미와 경제적 안정성을 잃어가고 있는 저성장 시대에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청년들이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짠내와 욜로

김생민이 게스트로 나온 지난주 <라디오 스타>의 제목은 ‘염전에서 욜로를 외치다’였다. 이날 방송은 김구라가 김생민의 ‘짠돌이’ 생활패턴을 조롱했다는 비난에 휩싸였다.

하지만 사실 이날 방송의 문제는 ‘짠내’와 ‘욜로’라는, 복잡한 맥락을 가진 청년 세대의 언어를 단지 소비의 형태를 가리키는 단순한 말로 바꿔치기했다는 사실이었다. ‘짠내’나는 서민에 이입한 이들은 돈 많은 연예인이 서민의 생활을 조롱했다고 분개했고, ‘욜로’족에 이입한 이들은 “현재를 즐기는 삶의 방식에 ‘스튜핏’을 외치며 돈에 목매다는 김생민 쪽이 더 불편했다”고 불평했다.

많은 청년들의 내면에선 매일같이 욜로와 생민함이 싸우고 있을 것이다. <김생민의 영수증>을 둘러싼 둘로 나뉜 극단적인 반응은 성장이 멈춘 시대의 젊은 세대에게 덧씌워진 유행어들, 이를테면 수저계급론, 짠내 배틀, 시발비용 등에 담긴 이들의 복잡한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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