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삶을 통제하려 하지만 인생은 ‘플랜’대로 가지 않는다

이로사 칼럼니스트

영화 ‘매기스 플랜’

영화 <매기스 플랜>에서 30대 미혼 여성인 매기(그레타 거윅)가 불륜관계인 존의 전처 조젯(줄리앤 무어)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장면. 매기는 존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그를 전처에게 보내 모든 것을 반듯하게 되돌려 놓으려는 계획을 짜지만 결국 운명을 완벽히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닫는다.

영화 <매기스 플랜>에서 30대 미혼 여성인 매기(그레타 거윅)가 불륜관계인 존의 전처 조젯(줄리앤 무어)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장면. 매기는 존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그를 전처에게 보내 모든 것을 반듯하게 되돌려 놓으려는 계획을 짜지만 결국 운명을 완벽히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닫는다.

영화 <매기스 플랜>의 첫 시퀀스. 30대 미혼 여성인 매기(그레타 거윅)는 오랜 (남성) 친구(빌 헤이더)를 만나 아이를 가질 계획에 대해 털어놓는다.

“나도 애 가져야겠어.”

“애 갖고 싶어? 하여튼 성미는 급해 가지고.”

“뭐 기다릴 거 있어?”

“애는 혼자 낳냐?”

“솔직해지자. 나는 지금껏 어떤 남자랑 6개월 넘게 사귀어 본 적이 없잖아. (…) 대학 동창 중에 가이 차일더스 기억나?”

“그 친구 아니야? 요새 피클 만들어 판다는?”

“아무튼 걔가 정자 기증해준대서 인공수정 해보려고. (…) 결혼하는 게 아니라 유전자만 빌리는 거야.”

“(…) 넌 어떻게 이런 걸 준비하면서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런 건 여자들이 막 49살 이럴 때 절박해서 하는 거 아니냐고.”

“난 그걸 최후의 보루로 생각하긴 싫어. 내 ‘의지’로 하고 싶지. 난 엄마 될 준비 됐어. 앞으로 사랑하는 남자를 찾을 확률도 별로 없을뿐더러 날 6개월 넘게 사랑해줄 남자도 없을 거야. 나는 내 현실을 직시하는 거야.”

옵션

때 아닌 <매기스 플랜>(2015)이 생각난 것은 최근 들어 꽤나 자주 친구들과 난자 냉동 보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이다. 난자가 노화해 가임력이 떨어지는 시기가 34~37살이라고 하니, 어느새 그런 생각을 할 만한 나이가 된 것이다(차병원 난임센터의 이름은 ‘37난자은행’이다).

난자가 건강한 나이의 최후 경계선. 내 몸에 대한 생물학적인 재인식. 생식 불능 상태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 무엇보다 내 인생의 어떤 ‘옵션’이 자의가 아닌 불가항력에 의해 사라져 버린다는 불안감. 그런 것들을 갑자기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가장 놀란 것은 주변인 중 몇몇이 이미 난자 냉동을 해놓았다는 사실이다. 미혼인 그들은 대체로 “지금? 지금은 나도 전혀 애 가질 생각 없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그것은 <매기스 플랜>의 매기가 6개월 이상 남자를 만나본 적 없는 자신의 지난 인생행로로 미뤄 남편 없이 아이를 갖겠다고 결정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매기는 가임기 막바지에 외부조건에 떠밀려 정자은행을 찾기보다, 일찌감치 자신의 의지로 삶을 계획하고자 한다.

[신콜렉터 Scene Collector]우리는 삶을 통제하려 하지만 인생은 ‘플랜’대로 가지 않는다

미혼 여성들이 ‘난자은행’을 찾는 것은 말 그대로 예금에 가깝다. 실제 사용 여부에 관계없이 ‘혹시’ 필요할 때에 대비해 옵션을 확보해두자는 차원이다. 그것은 젊은 내 몸의 일부를 떼어내어 늙은 나에게로 보내는 것이다. 가능한 나를 보관해뒀다가 불가능한 내게로 보내는 것이다. 즉 통제 불가능한 요소를 최소화해 미래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내 손아귀에 넣겠다는 의지의 발로다. <매기스 플랜>에서 매기의 오랜 친구는 이미 결혼해 아이도 있지만 정자은행에 보관해둔 정자가 있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혹시 또 모르잖아.”

최근 몇 년 사이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는 모양이다. 결혼 연령이 높아지는 추세에 따라, 난자 냉동은 과거 백혈병 등의 환자 중심에서 노령 출산에 대비해 가임력을 보존하기 위한 미혼 여성들 중심으로 그 비율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애플·페이스북 같은 기업들은 2~3년 전부터 복지 혜택 차원에서 여성 직원들에게 난자 냉동 시술을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난자(정자) 냉동은 모르는 사이 이미 인류에게 일반화된 하나의 옵션이 돼 가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삶의 통제와 조종에 관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죽음이라는 필연적 한계에 갇힌 인간은 할 수만 있다면 최대한 선택지를 늘리고 싶어 한다. 선택지를 확보한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의지로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의미이므로.

계획

그러니까 <매기스 플랜>의 매기는 능동적으로 삶을 통제하고자 하는 여성이다. 그녀는 “간섭쟁이” “통제 집착” 같은 말로 불리거나 설명되는데, 30대 초반에 기술의 힘을 빌려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가지려는 것도 그녀의 그러한 소신을 보여준다. 그녀는 친하지도 않은 대학 동창에게, 그가 수학에 특출난 유전자를 가졌다는 이유로 정자 기증을 받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그녀는 삼십 평생 누군가와 6개월 넘게 사귄 적이 없고, 앞으로 사랑하는 남자를 찾을 확률이 없다고 생각하며, 희박한 확률에 기대기보다 자신의 의지로 아이를 갖고 싶어 한다. 매기는 그런 자신과 자신의 소신에 따른 삶에 일종의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신콜렉터 Scene Collector]우리는 삶을 통제하려 하지만 인생은 ‘플랜’대로 가지 않는다

물론 삶은 매기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매기는 인공수정을 시도하려는 찰나 집에 찾아온 같은 학교 유부남 교수 존(에단 호크)과 사랑에 빠지고, 결국 그의 아이를 갖고 결혼을 하게 된다. 더구나 존은 자기밖에 모르는 아이 같은 남자다. 예민한 장미 같은 전처 조젯(줄리앤 무어)을 원예사처럼 돌봐야 했던 존은, 이제 모든 것을 혼자 돌보는 데 도가 튼 매기를 만나게 되자 재빨리 장미의 자리를 꿰찬다. 매기는 그를 원래 부인에게 ‘반품’하려는 두 번째 계획을 세운다. 이 ‘반품’은 질투와 원한에 찬 반품과는 거리가 멀다. 객관적으로 현실을 분석해 자신의 재량으로 모든 것을 반듯하게 되돌려놓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한 행동이다. 그녀는 자신뿐 아니라 다른 이의 삶까지 정돈하려 한다.

매기의 플랜이 모두 실패에 이른 뒤 이들 사이 관계의 도형이 이상하게 어긋나고 다시 재조립될 때, 매기는 울먹이며 존의 전 부인 조젯에게 말한다.

“다신 누군가의 운명에 끼어들지 않을 거예요. 나 자신의 운명에도요. 완전히 수동적이고 간섭도 안 하는, 불교 신자로 살래요.”

인간은 모두 자신만의 비눗방울 속에서 산다. 정자 기증자 가이 차일더스가 수학을 내세워 말했듯, 우리는 삶 전체를 볼 방법이 없고, 평생 전체의 일부만 어렴풋이 볼 뿐이다. 좌절감을 감당할 수 없다면 삶 전체를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옷깃만 스쳐 그 아름다움을 깨닫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마지막 즈음, 두 여자 매기와 조젯이 전혀 계획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와 버린 자신들의 삶 앞에서 부엌 바닥에 함께 주저앉아 ‘두드리기’를 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조젯은 “나로 사는 게 지긋지긋하다”며 괴로워하는 매기에게 생체자기제어 워크숍에서 배운 ‘두드리기’ 명상법을 권한다. 이들은 손가락으로 머리와 이마, 인중, 가슴을 차례로 두드리며 반복해 말한다.

“나는 통제하지 않는다(I’m not controlling).”

“나는 통제하지 않는다.”

그것은 좀 우스꽝스럽지만, 반복적으로 삶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욕망과 삶의 근원적인 통제 불가능성을 동시에 말하고 있어 눈물겹다.


Today`s HOT
브라질 홍수로 떠다니는 가스 실린더 이스라엘 건국 76주년 기념행사 멕시코-미국 국경에서 관측된 오로라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