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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 혹은 사회부적응자… 탈북민 고정 이미지 만드는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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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녀 혹은 사회부적응자… 탈북민 고정 이미지 만드는 TV

    [현장] 탈북민 3만 명 시대, 방송을 말한다

    2017년 3월 말 기준 통일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로 들어온 탈북민은 3만 490명을 기록했다. 이들은 각자의 동기와 사연을 가지고 북한을 떠나 한국에 정착했지만, 방송은 오랫동안 탈북민에 대해 단편적인 이미지만을 확대 재생산했다.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탈북민의 이미지가 '나이가 젊고 순박한 미녀' 혹은 국내에서 범죄를 저지르거나 가담하는 '사회부적응자' 정도로 고착화된 이유다.

    6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회관에서 한국PD연합회의 특별 심포지엄 '탈북민 3만 명 시대, 방송을 말한다'가 열렸다. 박현선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각종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본 탈북민의 이미지에 대해, '북한 분야 전문기자'로 꼽히는 장용훈 연합뉴스 기자는 탈북민의 보도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살폈다.

    ◇ 탈북민 이미지 '단순화'는 결국 통일관에도 영향 줘

    TV조선 '애정통일 남남북녀'에서 가상 결혼 커플로 나온 양준혁과 김은아 (사진='남남북녀' 캡처)

     

    박 교수는 KBS·MBC·SBS·EBS·채널A·TV조선·CBS TV 등 탈북민이 출연했거나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고정·일시 프로그램 모니터링, 심층 인터뷰, 문헌 분석 등을 통해 연구를 진행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방송이 만들고 있는 '탈북민 개인'의 이미지는 꽃미녀와 사회부적응자 두 갈래다.

    '꽃미녀 이미지'는 특히 종편 채널에서 강화된다. TV조선 '애정통일 남남북녀'에서는 19살 차이인 야구선수 양준혁과 탈북민 김은아가 짝을 지어 나오는데, 김은아는 방송에서 뭘 잘 몰라 순진무구하고 무언가를 해 주면 반응하는 수동적 존재로만 그려진다.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도 탈북 여성은 희화화되거나 이질적 대상으로 타자화되어 남성들의 시각적 대상으로 소비된다.

    지상파라고 해서 사정이 나은 것은 아니다. 지난달 4일 방송된 SBS '미운 우리 새끼'에서는 21살 연상인 김건모가 생활력 강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이소율에게 "사귀어 볼까"라고 묻는 장면이 나왔다. EBS '청춘 통일콘서트 통일드림'에서는 MC 김현욱이 탈북 여성 MC 김아라에게 "예뻐서 (한국에) 정착하는 게 쉬웠죠?"라고 물었고, 김아라는 "쉬웠다. 남자들이 잘해줘서"라고 답했다. 또 김아라를 비롯한 탈북 여성 MC들은 자신을 소개할 때 아예 "탈북미녀 OO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달 4일 SBS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한 탈북 여성 이소율 (사진='미운 우리 새끼' 캡처)

     

    그나마 '미녀' 이미지가 '상찬'의 의미라도 지닌 것과 상반되게, 젊은 미녀가 아닌 나머지 탈북민의 이미지는 '사회부적응자'로 고정돼 있다. 박 교수는 이를 "못살고 불쌍하고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 이등국민의 이미지"라고 표현했다.

    탈북민 '집단'은 가난하고 위험하다는 인상이 강하게 박혀 있다. 범죄에 개입해 사회를 혼란케 하거나 정치적 사건과 연계된 체제 위협자 이미지로 부각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일탈이 집단에 대한 낙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터넷 음란방송으로 10명이 체포된 사건을 다루면서, 그 중 1명이었던 '탈북여성'을 강조해 보도한 SBS뉴스(6월 21일) 보도를 한 예로 들 수 있다. 김정일의 아들 김정남의 암살사건 당시 '공작원 출신의 증언'이라며 원정화를 출연시킨 TV조선 '모란봉클럽'은 원 씨에게 '체제 위협자' 이미지를 강조했다.

    박 교수는 "일부 탈북민들이 과장·왜곡된 북한 이미지를 퍼트리고 있는데, 이 가운데는 자신의 경력을 부풀리거나 속여 자신도 '모르는' 북한 얘기를 할 때도 있다"며 "탈북민들은 금세 드러날 개인의 거짓말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탈북민을 조금 다른 식으로 접근하려는 움직임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남한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 노력하는 보통 사람', '현실에서의 갈등을 극복하는 인물', '수혜자에서 시혜자로 위치를 옮겨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사람', '북한에 대한 객관적 정보 전달자'의 모습을 조명하는 식이다.

    박 교수는 "통일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북한에 대한 거부감은 늘어나는 현 시점에서 대중매체의 탈북민에 대한 인식(매체는 증가, 탈북민 이미지 획일화)이 바뀌지 않는 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질수록 반통일의식을 양산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탈북민의 평범한 정착사례 발굴 △탈북민 방송 시 사실검증에 힘쓰는 등 보다 책임감 있는 태도를 가질 것 △낙인화 지양 등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 탈북민의 과거보다는 '현재'에 집중해야

    지난해 4월, 북한자유연합 수잔 숄티 대표와 탈북자 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이 경기도 파주 임진각에서 제13회 북한자유주간 대북전단살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특히 뉴스 보도에서는 이른바 '애국보수' 세력으로서의 탈북민들의 모습이 부각된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장 기자는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북한과 탈북민 이미지가 '불쌍, 가련, 더러움, 지저분', '송환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불법도 마다하지 않으며 극악한', '비참하고 억압에 익숙한' 등으로 고정돼 있다는 점을 들었다.

    특히 뉴스를 통해 드러나는 탈북민들은 자유한국당 지지 같은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거나, 어떤 행사에 '동원'되는 이미지다.

    장 기자는 출신 지역을 많이 따지는 한국사회에서는 탈북민들 또한 고향의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서 "북한이 '사람 살 수 없는 곳'이라는 이미지의 강화는 탈북민이 정상적인 사람과 다르다는 생각을 고착화하고, 탈북민은 스스로 자신의 고향을 폄훼함으로써 이미지를 악화시키는 경향을 갖는다"고 분석했다.

    장 기자는 탈북민들의 '과거'보다는 '현재'에 집중한 보도를 하자고 제언했다. 북한에서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현재 한국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주목하자는 설명이다. 또, 탈북민들에게 지나치게 북한 이야기를 강요하지 말자고 주장했다. 그런 식으로 생산돼 오락으로 소비되는 북한의 이미지는 탈북민의 정착을 오히려 가로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6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회관에서 한국PD연합회의 특별 심포지엄 '탈북민 3만 명 시대, 방송을 말한다'가 열렸다. (사진=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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